1.

편지는 아주 드물게 출몰하는 공동체와 만남의 글쓰기이다. 이 공동체는 수신인과 발신인이 그 외의 독자를 배제하고 공유하는 독점적인 관계를 전제한다. 이 공동체는 보편의 언어나 감각에 대체로 무관심하다. 편지로 형성되는 공동체는 그들의 언어가 일반적 심상으로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는 – 치명적이지만 종국에 활기를 북돋는 – 자신들만의 대화, 즉 ‘주체(들)’로서의 대화를 통해 어떤 시공간적인 영역을 만든다. 나는 정말이지 이런 종류의 ‘공동적(common)’ 정황에만 관심이 있다.

 

 

2.

올해가 시작되던 겨울과 봄 사이에 몇 사람에게서 몇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이제는 아득한 ‘여행’의 서정을 품은 엽서 하나가 생각난다. 아래는 올해 2월, 파리에 머물고 있던 친구 b가 보내준 엽서 중 하나의 전문이다.

“이 엽서는 그냥 세느강 옆을 지나다가 1유로를 주고 샀어. 바로 노틀담에 있는 가고일이지. 거기 있는 가고일을 좋아해.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성당에 기생하는 추한 괴물이라서. 불타버린 노틀담 성당에는 무엇이 있을까 해서 갔는데 사실 탑부분은 그대로 있고 첨탑과 뼈대구조만 사라진 것이라 크게 ‘노틀담 성당이 사라졌다!’라는 마음은 별로 들지 않더라고. 가고일들도 다 잘 있었어.

조금 인상깊었던 것은 그 주변의 공원까지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해 두고 주변으로 펜스를 둘러서 불타고 있는 노틀담 사진을 걸어 둔 것이었어. 그것도 그냥 건 것이 아니고 ‘exposition’이라고 말하면서. 소방관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복원계획을 세우거나, 아님 지나버린 과거의 영광을 낭만화하면서 슬퍼하거나,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을 벽일 텐데. 거기에 불에 타는 중인 성당의 순간을 걸어 두다니. 약간 허망하면서도 마음이 아팠어. 우리는 그 모든 결과를 알면서, 그 사진을 바라볼 수나 있는 거지. 영원히 시간이 저 순간에 멈추기를 바라는 것처럼. 난 정말로 파리에 와서 언니를 생각했어, 많이. 언니도 오고 싶어 했으니까. 모든 게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불타는 성당 사진에서 건져 올릴 수 있을까?”

 

3.

어제의 관광지가 오늘의 추모를 가능하게 할 때, 광장의 의미가 이중으로 도약한다. 우선, 불타버린 성당의 자리에 그 불탄 사건 자체가 ‘전시(exposition)’ 되고 있는 정황은 여전히 관광지를 관광지로 남기며 오히려 그 성격을 강화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어제의 관광지가 오늘의 추모를 만들어내는 때에 현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 이전과 다른 ‘공동’이었다는 점이다.

‘관광지’는 전염병과 마스크, 거리 두기와 격리(해제)의 시대에 또 다른 차원에 접어들었지만, 관광지의 상징성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글 맵의 한 좌표로, 어떤 도시를 대표하는(represent) 기호이자 이미지로 역할 한다. 이때, 불타버린 것, 그리고 그것의 복구 과정 자체가 기호와 이미지의 상징성에 포섭된다. 그 객체의 역사가 ‘중건’과 같은 굴절 지점을 가질 때에도, 노트르담은 노트르담인 이유로, 숭례문이 숭례문인 이유로 대표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도시의 역사와 생태의 맥락을 한 손에 쥐고, 그러한 역사와 생태 자체를 소비재로 삼켜 버리는 관광의 문법 안에서 또 다른 평면을 열어 젖히며, 관광 및 광장의 기호와 이미지를 그 자신 ‘관광객’이자 ‘시민’의 자아 안으로 소화하는 개별 서사 속에 편입된다.

나는 19세기 프랑스의 문학사와 혁명사, 그것을 매개로 번지는 로맨틱한 뮤지컬 서사와 노래, 어떤 문인의 그림자를 함께 떠올리면서, 그러는 와중에도 지치지 않으며 인스타그램 피드를 좇고, 패션 잡지 화보에서 가장 덜 유치하게 찍힌 사진을 참조하여 사진을 남기고, 최대한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을 피할 수 있는 근방의 카페를 찾아 나서면서 노트르담 주변을 서성였다. (이 모든 과정에 깃든 관광객-성과 근대적 시민성과, 한편에 그 결과물로서의 자기 자신에 도취한 채로 끊임없이 그 어떤 스테레오타입과 구분 지으려는 충동들.) 그리고 이제는 부분적으로 사라진 노트르담, 다시 세워지고 있는 노트르담, 한 번도 ‘내 것’ 이었던 적 없는 도시와 그 도시의 상징물을 계속해서 노스탤직하게 그리고 있다. 저 거대한 사물과 사물을 품은 도시, 광장은 그 앞에 선 사람들을 부풀려진 자아의 모양으로 쉽게 동화시킨다. 이 동화의 작용은 서둘러 얄팍하지만 단단한 ‘사회적’ 사회를 형성한다. 그것이 관광지와 광장의 관습적 기능이다. 재빠른 공동체의 형성, 그것은 온갖 서사와 심상을 타고 지속된다. 여기서 관광객(포스트 근대적 글로벌리즘 시대의 세계 시민)에게 허락된 노스탤지어는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대상을 이미 소유된 과거의 것으로 감상하게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가져본 적 없는 그 대상이 상실됨으로써, 눈앞에서 실제가 과거의 것으로 된다는 점이다. 이쯤에서 앞서 언급한 도약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이미 낡고 뻔해진 ‘관광지’이자 모두의 광장인 이유로 소비되는 노스탤지어의 급진성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볼 수 있겠다. 노스탤지어의 막연함, 거리, 심리적이고 서사화되었으며 상상된 무엇은 그 자신의 가능성을 실제적인 상실로 대체한다. 온갖 기호와 이미지, 서사의 평면 속에 실체를 잃어버린 듯했던 대상은 일순간, 그 ‘불타고 있는’ 무엇이 되어, 손쓸 수 없이 무너지고 있는 저 거대한 사물로 자신의 존재성을, 잃어버려지는 시간의 물질성을 발휘한다. 이로써 노스탤지어가 그 자신의 무력함을 극복하고 실체로 확인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여기 관광객과 관광객 아닌 사람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이질적 주체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다만 무너지고 있는 무엇을 바라보기 위해 모인다.

이제 슬며시 발견되는 두 도약.

하나, 노트르담의 붕괴라는 스펙터클과 그 결과로 남은 광장이 인류의, 유구한 역사의, 유물로서의 대표성을 재확인하며 발전하는, ‘관광지’의 도약.

둘, 정말로 ‘사라진 무엇’, 필연의 유한성, 부정할 수 없는 물질성을 지닌 사물과 만나는 순간, 그 앞에서 침묵으로 엮이고 흩어지는 사람들…! 자기 충족적이고 자기 반성적인 관광객의, ‘공동’으로의 도약.

 

Notre-dame de Paris en feu: ce que l’on sait, 이미지 출처: https://www.leparisien.fr/paris-75/notre-dame-de-paris-en-feu-ce-que-l-on-sait-15-04-2019-8054055.php ©Oliver Arandel

 

4.

불가능의 마주침.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상실의 유한성 앞으로 몰려든 이들이 (잠재적) 무한성으로 응대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1962년 파리의 샤론 역,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 과정에서 9명의 시민이 살해되었다. 이들의 장례 행렬이 있던 날 침묵의 무리들이 형성되었다. 블랑쇼는 “그 무리들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거기에 더할 수 있는 것도 뺄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무리들 전체는 헤아리거나 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전체는 닫힌 전체성이 아니라, 전체성 너머의 완전성 가운데 조용히 군림하면서 거기에 있었다. 최고의 힘, 왜냐하면 그들은 약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잠재적이지만 절대적인 무력과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쓴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가 그 성격을 정의할 수 있는 공동체와는 다른 형태의 공동체가 있었다고 믿는다.” 고 쓴다.1모리스 블랑쇼, 박준상 옮김,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문학과 지성사, 2005, p.54.

여기서 그가 본 “다른 형태의 공동체”는 꽤 단단하고 오래된 신념으로 그가 ‘연인들의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의 성격을 가진다. 절대적 유한성(언제든 끝나는 삶과 사랑)과 무한성(그러한 유한성의 부정과 대속)의 대치 속에, “은밀하게 느슨해진” 연대, 결코 확실할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잠재적이고, 지극히 단수적인 관계가 상정된다. 샤론의 행렬에 대한 블랑쇼의 이어지는 단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속이 어떠한 것이든 거기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이 예외적인 날 이해되었다. 어느 누구도 해산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자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과 같은 필연성에 따라 우리는 헤어졌다.”2같은 곳.

 

5.

노트르담을 지키는 괴물이 그려진 엽서에 답하기 위해, 나는 티치아노(Titian)의 <장갑을 낀 남자(Man with a Glove)>(c.1520)가 있는 엽서를 택했다. 이 그림이 있는 뮤지엄 컬렉션 방의 이름은 ‘모나리자 방’이다.

다빈치의 유명한 <모나리자> 앞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것의 효과로서, 혹은 반사적 충동으로서 <모나리자>가 걸린 방에 있는 다른 작품들과 관객 사이의 관계가 형성된다. 관객은 <모나리자>가 있는 방의 문을 지키고 있는 그림을 스치듯 지나칠 수 있고, 혹은 진지한 관객의 태도를 유지하며 오래도록 감상할 수도 있다. 그렇게 각자는 <모나리자>에 도달하는 과정 중에 나름의 방식으로 <모나리자>가 아닌 다른 그림들을 대한다. 여기서 나는 전도된 충동에 사로잡힌다. ‘여기까지 왔으니 <모나리자>를 보자’ – 로 시작한 관광은, <모나리자>가 아닌 곳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 ‘차별화된 관객’으로 이동하는 모종의 충동을 낳는다. 이 충동 속에서 나는 젊은 티치아노가 그린 아름다운 남성의 초상화 앞에, 오래도록 서 있다.

검정이 주조인 이 우아한 초상화에 매료되는 일은 간단했다. 배경으로 묻히는 듯하지만 절대 그 안으로 소멸하지 않는 편안한 자세의 남자가 있다. 관객의 시선이 가장 편안하게 닿는 위치엔 그의 손이 보인다. 그는 한 손에 장갑을 끼고 있다. 장갑을 낀 한 손은 나머지 끼지 않은 장갑을 쥔 채로 살짝 그것을 늘어뜨린다. 장갑을 끼고 있으며, 다른 한 장갑을 쥐고 있고, 몸의 무게를 살짝 실어 기대어 놓은 손과 팔은, 주인공의 전체적인 인상과 닮아 있다. 다소간의 긴장과 알 수 없는 응시 속에 담긴 부드러운 우울을 그의 손이 싣고 있는 것이다. 장갑을 끼지 않은 다른 손은 인덱스 손가락을 아래로 향한 채, 무언가를 가리키는 동작으로 보는 사람의 시선을 균형 있게 잡아끈다. 표정을 담은 두 손과, 얼굴, 눈. 이들을 감싸는 새하얗고 굽이치는 옷주름이 다시 표정들을 그림의 주제에 가깝게 떠오르게 한다.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 데서 오는 시선의 거리, 그것이 풍기는 그윽한 정서가 전체를 지휘한다.

그림 안에 앉은 남자는 <모나리자>가 사람들을 도발적으로 응시하는 그늘 아래에, 벽의 뒤편에 앉아 있으며, 오로지 이러한 그늘과 뒤편을 매개로 한 번 더 발생한다. 그러니까 <모나리자>에서 유래하여 그것을 벗어남으로써 존재하는 <장갑을 낀 남자>가 있다. 루브르를 방문하는 목적이 오로지 <모나리자>였던 그 어떤 관광객 ‘나’와 A와 B가 한 순간 감각과 응시의 부름 앞에 이미지 경험을 나눈다. 아주 이질적인 경험들과 그 주체들을 하나의 평면에 잠시 자리 잡게 만드는 지점에, 그것 – 그림이 – 분명하게 어떤 물질로 자리를 차지한다.

 

Titian, Man with a Glove, Oil on canvas, 100×89cm, Musée du Louvre, Paris, c.1520

 

Leonardo da Vinci, Mona Lisa, Oil on poplar panel, Musée du Louvre, Paris, 77×53cm, c.1517

 

6.

『판단력 비판』은 칸트(Immanuel Kant)가 이성의 반성 능력 특수와 보편의 관계를 연결 짓는 능력을 다루는 중에, 특히 특수한 것들로부터도 보편을 논리적으로 발견해 내는 능력을 설명한다. 여기서 미적 판단은 예술미에 관계하는 특수한 것에 관여하는 반성적 능력이며, 선행하는 개념적 인식을 전제하지 않고, 개인의 이해관계 여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무목적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 이성의 법에서 벗어나지 않아 ‘합목적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때 칸트가 도출하려는 미적 판단에는 필연적 조건이 존재하는데, 이는 ‘공통감각(sensus communis)’의 이념으로 불린다.3다음을 참조. 한상원, 「공통감각과 메텍시스 – 칸트, 랑시에르, 아도르노에게서 ‘도래할’ 공동체의 원리」, 『도시인문학연구』, 제12권, 1호, 2017.

아도르노(Theodore Adorno)는 여기서 칸트가 어떤 작품과 주체의 양쪽에 보편과 필연의 객관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독해한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칸트는 무엇을 ‘보편적’으로 예술이라고 인준할 판단의 기준이 각 주관에게 전제되어 있다는 듯 서술하면서도 완전히 그 객관성을 주체에서만 찾지는 않고, 객관적 요인과 주관적 요인 사이의 일치라는 ‘위태로운 평형’ 관계를 주장함으로써 양면적 진술을 유지한다. 이러한 칸트 독해/비판에 이어 아도르노는 그 자신의 『미학이론』을 통해 ‘예술 작품의 이론’을 향해 간다. 그는 작품에 있어 사물적 성격이 본질적이라 말하는 한편 그것의 사물적 성격을 부정하는 일 역시도 본질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칸트와 칸트 이후의 미학이 양면적 역설에 머문 그 지점을 지속적으로 사유하면서, “사물로 굳어 버리지” 않으며 “무기력한 주관적 충동으로 퇴화되어 경험 세계 속으로 빠지고 말”지 않을 것을 ‘작품’에게 요구한다.4테오도어 아도르노, 홍승용 옮김, 『미학이론』, 문학과 지성사, 1987, p.276.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이 간단히 정식화한 것처럼,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에 의해 재독해 된 칸트의 미학에서 핵심은 “예술에 관계하는 우리 경험의 자율성(the autonomy of our experience in relation to art)”이다.5Claire Bishop, Artificial Hells, Verso, 2012, p.27. 랑시에르가 ‘프롤레타리아의 밤’으로부터 ‘무지한 스승’과 그의 제자들에게서, 그리고 ‘감각의 분할’에 이르기까지 믿고 있는 가능성은, 그 스스로 윤리적이고자 하는 비판적 작품들이 아니고, 사회의 분배 상태를 재감각하고 재배치하는 (감상, 경험, 미적 판단의) 주체의 능력인 것이다. 비숍은 랑시에르의 이러한 접근이 어떤 ‘작품’에 대하여 ‘경험’의 가능성, 무언가를 감각하는 주체의 편에 둔다고 본다.

이 논의의 흐름 안에서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다만 물질/사물에 다름 아닌 어떤 작품과 그것을 보는/경험하는/감상하는/인식하는 자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특수한 동시에 보편적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신은 왜 어떤 이미지 – 그 출몰 혹은 상실 앞에서 무언가를 경험하는가? 각각의 당신들의 경험은 왜 어떤 순간 한 점에서, 한 평면에서 잠시 만나는가? 또 흩어지는가?

 

7.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6강보원, “하나는 여럿 둘은 셋”, 『세 개 이상의 모형』 해설, 김유림, 문학과 지성사, 2020, p.142. 만나는 그것의 계기를 가늠해보는 일이 내가 지금 ‘공동’을 생각하는 방식이다. 공동은 항상 거의 없는 상태로만, 아주 가까스로, 현존한다. 그것의 (비)존재는 발화되는 순간에만 유효한 이름과 같이, 혹은 언제든 폐기 가능하며 마찬가지로 언제든 회생 가능한 대화들과 같이, 드물게 경험된다. 공동은 형성되는 중이며 소멸되는 중이다. 그래서 그것은 결코 세워질 수 없다. 공동에 관여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남근적 형상으로 그 자신을 세우는 기념비나 영웅적 조각과 거리가 멀 것이다. 공동에 관여하는 이미지는 어떤 사회를 세우는 것 뒤에서, 혹은 사이에서 비집고 들어와 (비)존재한다.

자주 생각나는 문장,

모든 게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불타는 성당 사진에서 건져 올릴 수 있을까?

b가 보낸 엽서의 마지막 문장으로부터 나는 그가 나에게 던지는 어렴풋한 우울과 슬픔을 느꼈다. “모든 게 다 제자리를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남은 것은 ‘불타는 성당’의 사진과 노트르담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가고일, 그리고 가고일을 보여주는 흑백의 엽서이고, 오로지 이 주어진 이미지들 앞에서 잔여와 흔적의 상태를 감각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 문제적인 사진은 오로지 떠나가는 상태와 남겨진 상태 사이를 주시하게 만든다. 복원되는 미래의 청사진이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과거 회상이 가지고 있는 희뿌연 두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사진과 사진이 지시하는 붕괴의 사건은 뚜렷한 사물/물질로서 무엇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 자신, 떠나가고 사라지는 중이며, 동시에 사건을 발생시키고 있는 사물 스스로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은 이미지를 남기고, 이미지와의 관계에 놓인 주체들이 무언가 – 인식 혹은 감각의 수행 – 를 한다.

응시/경험/인식으로 발생하는 이미지와 그 찰나의 사건적 만남에는 모종의 상실이 들어있다. 상실을 발견하는 각자의 고독하고도 고유한 것이, 공동의 대화를 유발한다. 이 공동은 현재에 유효한 모든 사회들 사이에, 뒤편에, 혹은 후에 등장할 수 있다. “언제나 깨지기 쉬운 이질적 결합이나 반사회적 사회”7모리스 블랑쇼, 같은 책, p.55.가, 치명적인 동시에 활기를 북돋는 대화가, 편지가 등장한다.

어떤 상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 사라짐 앞에서 아주 잠깐 공동체가 등장한다. 이때의 공동체는 상실의 경험을 공통으로 나누어 가진다. 사람들은 한때 시간과 공간을 점유했던, 이제는 상실된 무엇을 사유하며, 그것이 ‘존재하던 때’를 추억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각자가 품게 될, 품고 있는 애도를 감히 견주지는 않으며 가까스로 공유되는 불가능으로 연결된다.

 

8.

우리는 단지 어떤 이미지 앞에 있으려 했던 것 같다.